손정의는 다시 세계 최고 벤처캐피탈리스트 될 수 있을까- ①

 

어린 시절 흙바닥에서 많이 하던 땅따먹기라는 게임이 있다.  손가락으로 돌을 쳐서 돌이 이동한 거리까지 선을 긋고, 세 번 안에 돌이 안전하게 시작점으로 돌아오면 이동한 면을 내 땅으로 삼는 게임이다. 돌이 이동한 지점은 점, 이 점을 이으면 선, 선을 이으면 면이 된다. 세상의 이치와 비즈니스 전략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임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요즘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소프트뱅크 창사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손 회장은 어째서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까. 그의 점, 선, 면이 무엇이었을까.


손 회장은 '군(群) 전략' 경영 방식으로 유명하다. 하나의 산업을 공략하기 위해 그와 연관된 기업군을 묶어 집중 투자, 육성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런 관련 없는 기업들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기업군은 점이고, 시너지 효과는 선이며, 이게 통틀어 산입이라는 면이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모빌리티다. 손 회장은 일찌감치 우버·디디추싱·그랩 등 세계적인 승차공유 회사에 투자했다. 그리고 스프린트 같은 미국의 이동통신 회사를 인수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ARM홀딩스, 엔비디아 같은 반도체 기업을 사들였다. 


4~5년 전만 해도 이를 일관성 없는 투자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각 점을 이어 보면 승차공유는 모빌리티의 혁신과 자율주행차 시대를 가져왔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반도체 기술이 필요해졌으며, 안정적으로 받쳐줄 인프라를 확충해야 했다.


손 회장은 밑그림을 그려놓고 산업 생태계를 육성 혹은 선점할 수 있는 요소요소에 포석을 깔아둔 것이다. 이런 여러 군들은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따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게 된다.

일종의 자체적으로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손 회장의 이런 빅 픽처에 무릎을 탁 친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런 투자 방식이 언젠가부터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손 회장은 세계 최고의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일본 증권가에서는 '손정의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다. 손 회장의 종잡기 어려운 행보와 모험적 기질, 미래 기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부채비율을 높여 소프트뱅크의 기업 가치를 실제보다 더욱 떨어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리바바 투자 성공 등으로 손 회장이 자신의 꿈을 실제로 구현해나가자 소프트뱅크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업이 됐고, 비전펀드에도 막대한 투자금이 몰려들었다. 일본 도요타가 70~80년대 공업화 사회에 정점에 올랐듯, 소프트뱅크는 디지털로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통해 2000년대 이후 최고 기업에 올랐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와 풍부한 자본 덕에 다양한 사업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도 됐다. 손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수혜지인 셈이다.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의 손실이 커지며 모기업도 어려움에 몰아넣고 있다. 위워크의 투자 손실이 커졌고, 투자 중이던 위성통신 벤처기업이 파산했다. 궁지에 몰린 소프트뱅크는 가까스로 인수합병에 성공한 미국 3위 이동통신회사 T모바일의 보유지분을 독일의 도이치텔레콤에 매각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통찰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역사적 흐름에 빗대어 현재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다. 정부·국회·언론·금융·증권 등 영역에서 정치·사회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대책을 내놓을 때의 사고방식이다.


사업가들은 다소 다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미래 가치를 차지할 수 있을까다. 창업자들이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세상을 알기 위해 애쓰고, 균형감각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사업적으로 발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점이다. 내가 10년 뒤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면 투자를 늘릴 시점이 3년 뒤인지, 5년 뒤인지, 7년 뒤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10년 뒤 세상이 내가 바라본 대로 바뀔지 아닐지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만약 틀렸다고 판단이 서면 그에 맞춰 행동을 바꾸는 융통성과 용기가 필요하다.


손정의 회장은 소프트뱅크를 창업할 때 애초부터 300년 왕국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300년을 30년 단위로 10번을 쪼개 개별 시대별로 사업적 전략을 갖고 전개하겠다고도 했다. 소프트뱅크에는 30년 비전을 만드는 '비전개발팀'이 있는데, 팀원들이 미래 설계를 잘 못하고 고민하고 있자 손 회장이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혼란스러울 때는 멀리 봐야 해. 30년 단위로 잘라서 예측하니깐 어려운 거야. 우선은 과감하게 300년 앞을 내다보고 그것으로부터 거슬러 올라와 30년 후를 예상해 봐."


세상이 빠르게 변할지라도 300년 뒤 세상이 어떤 모습일까 희미한 그림은 그려진다. 이를 30년 단위로 앞당기면 어떤 산업과 기술이 필요해질지 그림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300년 뒤라는 전제 자체가 애매모호하기도 하다.